영국 NHS 입원, 입덧으로 영국에서 입원한 썰

# 입덧이 이렇게 힘든거였어? 

난 아무래도 성교육을 잘못 받았나보다... 임신이 이렇게 빨리 되는 줄도 몰랐고, 입덧이 이렇게 고된일인 줄도 몰랐고, 입덧때문에 내 삶이 통째로 망가질 줄도 몰랐더랬다. 

 

 

임신확인을 하고나서 얼마 안됬을때 대략 6주? 정도였던 것 같은데, 

그때부터 온갖 냄새에 예민해지기 시작했다. 특히 싫었던것은 밥짓는 냄새와 김치 냄새였다. 그리고 고기 굽는 냄새도 역겨웠다. 

 

 

남편에게서 조금이라도 냄새가 나면, 너 뭐 먹었어? 냄새나. 씻고와. 라고 하도 뭐라 해대서 남편이 그레이 하운드투스 한마리랑 같이 사는 것 같다고 농담했을 지경ㅋㅋㅋㅋㅋㅋ 

 

 

임신 7~8주 차부터 입덧이란게 슬슬 올라왔다.

처음에는 입덧이 뭔지도 모르고 평소처럼 짜파게티 하나를 끓여서 다 먹었는데,

그게 화근이었는지 그대로 출력~ ~ ~ ~ ~ 

그래서 그 후부터는 내가 평소 먹던 반만 먹기로 했다. 하지만 그마저도 시간이 지날수록 입덧은 점점 예민하고 못되게 굴어왔다. 

 

 

정말이지 내 삶의 통제권을 아예 잃어버린 것 같았다. 

본격적 입덧이 시작하고 나서 거의 한달가량을 침대에 누워만 있었다. 조금이라도 움직이려고 하면 위가 울렁대면서 헛구역질을 했으니까. 

 

 

그렇게 한달동안 내가 했던 일은 

울기 ㅠㅠㅠㅠㅠㅠ헝헝... 그냥 생각없이 유튜브 보기, 토하기, 정말 시체나 다름없었던 생활이었다. 

 

 

 

# 11 - 12주차, 응급실 가다 

입덧은 끝날 새를 안보이고 점점 심해지기만 했다. 그리고 나는 더이상 물도 먹지 못할 지경에 이르렀다. 

NHS 에서 입덧약을 받아 먹어보았지만, 오히려 부작용만 있었을 뿐 (심하게 졸림, 속이 더 메슥거림, 게다가 게워냄) 맞지 않는 듯 해서 쌩 몸으로 버티던 중이었다. 

 

 

쌩 몸으로 버틴 기간이 너무 오래되서였을까? 어느날 밤, 나는 연속으로 토를 세번이나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새벽 5시 경에는 증세가 더욱 악화되서 아무것도 먹지 않았는데, 초록색 토를 하기 시작했다. 조금만 버티다 아침에 남편과 병원에 가려고 했으나 전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아서 결국 남편은 응급실로 전화를 해야만 했다.

 

 

남편이 통화를 다하고, 응급센터 쪽에서 내 증상을 본인에게 직접 듣기를 원해서 우리는 스피커폰을 켜놓고 대답을 했다. 

그리고 응급센터에서는 병원에서 차를 보내준다고 했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오지 않아 다시 물어보니 우리보고 직접 가란다 ㅋㅋㅋㅋㅋ ;;;;

 

 

아침 7시가 되서야 우리는 택시를 불러 병원 응급실로 향했다. 이미 병원 응급실에서는 내 정보를 다 받아놓았나보더라. 이름을 대니까, 앉아서 기다리라고 했고, 나를 맞이한 간호사는 이미 나의 증상을 알고 있었다. 

 

 

# 제가 탈수증상이라구요?

대기실에 앉아있다가 간호사가 내 이름을 불러서 홀을 가로질러 가는데 갑자기 토가 올라오더라 ㅠㅠㅠㅠㅠㅠㅠㅠ

그래서 내가 온 몸짓으로 토한다는 걸 표현하니까 간호사가 토를 할 수 있게 갈색 통 같은걸 주셨다.. 그리고 쏟아낸 초록색 토 하...

 

 

조금 진정이 된 후에 피검사를 하고, 구토를 억제하는 정맥주사를 맞았다. 그리고 소변검사를 했다. 

시간이 조금 지나자, 다른 간호사가 나를 부르더니 나를 휠체어 의자에 앉히곤 거대 수액을 맞히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를 산과병동으로 옮겨주겠다고 했다. 

 

 

내가 있던 응급실도 꽤 커서, 같은 건물에 있는 건줄 알았는데 아예 다른 건물로 이동을 하더라. 

그래서 나를 휠체어에 태운거였어...ㅋㅋㅋㅋㅋㅋ 내 인생 처음으로 남이 밀어주는 휠체어를 타고 수액을 맞는 기분이란......

진짜 이상했다. 정말 환자가 된 느낌 

 

산과에서 준 영양제와 수액

 

그렇게 옮겨진 산과, 

또 다시 산과의 간호사가 나의 이것저것들을 물었다. 간호사는 인도계 처럼 보였는데, (아마 맞는듯 엑센트도 그쪽에 가까웠으니) 간호사의 질문이 '너 변(stool) 얼마나 자주 보니?' 였는데 내가 stool 을 못알아들어서 미안한데 질문이 뭐야? 라고 하면서 점점 대화가 꼬이기 시작...ㅋㅋㅋㅋㅋ

 

 

그래서 간호사가 " 너 영어 할 줄 알지? " 라고 함ㅋㅋㅋㅋㅋ내가 " 당연하지  " 라고 하니, " 영어에서 Number two 가 무슨 뜻인지 알아? 그거 말하는거야" 라고 하기 시작. ( 영어회화에서 Number Two는 변을 보다 인데, 나도 이걸 남편에게 배웠었음. '나 똥싸러가' 라고 하기 민망하니, 좀 돌려서 말하는 느낌의 원어민들이 아~~주 많이 쓰는 단어 중 하나이다. )

 

 

그제서야 나는 " 아,  나 변 얼마나 자주 보냐고? 나 변비있냐고? " 라고 알아듣기 시작했다. 

Number two 랑, Constipation(변비) 는 뭔지 아는데 Stool 은 모르는 나란 사람...하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렇게 간호사와 면담이 끝나고 한 한시간 기다렸나?

한시간도 넘게 기다리니 드디어 산과 담당 의사와 만날 수 있었다. 

의사는 내 피검사 결과는 좋은데 소변검사에 문제가 있다고 했다. 소변검사 결과 내가 심각한 탈수증세가 있어서, 하루 입원하는게 좋겠다고 했다. 앞으로 수액 세팩을 더 줄테니, 입원을 권한다 라는 말을 건냈다.

 

 

 

# 입-퇴원 서류절차가 없는 영국병원입원 

그렇게 또 몇시간을 하염없이 기다리니 간호사가 와서 " 너 입원병동에 자리가 났으니 거길로 옮겨줄게 " 라고 했다. 내가 지낸 입원실은 무려 개인 화장실이 딸린 개인방이었는데 생각보다 시설이 좋아서 좀 놀랐다. 

 

 

생각보다 좋아서 놀랬던 개인병실

 

 

게다가 모든 간호사 및 나를 도와주시는 분들이 정말 친절했다. 

간호사가 아닌 일반 어시스트 분이 와서 필요한게 있으면 언제든지 벨을 누르라고 했고, 유니폼으로 일반 어시스트인지, 보조 간호사인지, 수간호사인지 구분하는 방법도 알려주었다. 

 

 

 

저녁으로 먹었던 토마토 수프

며칠을 제대로 못먹었던 탓일까, 딸랑 토마토 수프 하나 먹는데도 그게 그렇게 맛있더라.... 

 

 

하루 입원하는 동안 끼니는 잘 챙겨주더라. 식사시간 전에 직원분이 와서 우리 메뉴 ~~ 이거 있는데 뭘로 저녁먹을래? 라고 물어보고 두번의 간식도 주었다. 

아침: 토스트, 점심: 비프커리, 간식: 밀크티와 간식

 

 

한국과 달랐던 점은 서류절차가 아예 없었다는 것. 

특히 퇴원할 때,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ㅋㅋㅋ 너무 쿨하게 보내줘서, 그게 좀 신기했다. 나는 뭐 페이퍼 작성이 있을 줄 알았는데 그런것 없이 " 너 소변검사 재검사 결과가 좋네, 음식을 잘 먹니? 속은 괜찮니? 입덧약 처방해 줄테니 이제 가도 좋아 " 가 끝이였다. 

 

 

 

 

# 전혀 허술하다고 느껴지지 않았던 NHS, BUT.....

2년동안 워홀러로 생활하면서 NHS에 등록조차 안했었고, 사실 NHS에 대해 의심이 많았는데 이번 입원을 통해 내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다. 

 

 

나를 도와준 간호사들, 병원 내 스태프들, 의사들은 감사하게도 친절했고, 마음을 놓고 내 몸을 맡길 수 있도록 신뢰를 주었다.막연히 영국 병원시스템은 구질구질하고 세련되지 않을거야. 라는 생각과는 다르게 한국의 대학병원급의 크기와 시설들과 비슷해서 좀 놀라기도 했다. 

 

 

그러나 단점이었던거..

너무 느렸다. ㅠㅠㅠㅠㅠㅠㅠ 느리고 느리고 또 느렸다. 

남편이 응급으로 전화했을 때부터 느렸다. 아마 내가 초 응급 환자가 아니여서 그랬는지는 몰라도, 나에게 일일히 본인확인 + 상태확인을 다 받아갔고, 응급실에 가서도 검사하나 하고 나서 최소 30분이상은 기다렸고, 병동을 옮길때는 거의 2시간을 막연하게 기다려야만 했다. 

 

 

특히 다음날 퇴원할 때에는 처방전과 약을 받는 과정에서 잡음이 있었는지 거의 3시간 이상은 기다렸던 것 같다. 

 

 

영국 기준 보통의 속도로 이루어지는 일들이겠지만 한국인으로써는 쬐끔 답답한 마음이 들었던건 사실! ㅎㅎ

그래도 친절하게 봐주신 NHS 에게 무한 감사를 드리는 바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