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생활 2년이 나에게 가져다준 변화

 

 

누구에게나 첫 경험은 있다. 처음으로 글을 읽던 날, 첫 등교, 첫 연애, 첫 직장...

런던이 나에게 그러하다. 런던은 나에게 처음으로 혼자 살 수 있도록 독립심을 길러준 나라이며, 처음으로 한국문화가 아닌 다른 문화를 제대로 배우게 해 준 나라이다. 

(런던에서 살기 전, 필리핀과 캄보디아에서 어학연수와 봉사활동으로 산적이 있지만 식, 주가 다 해결된 상황이어서 온전하게 혼자 살아냈다고 하긴 어렵다.)

 

 

#런던의 첫인상

히드로 공항에서 내려 우버를 타고 윔블던으로 가는 길,

회색빛 하늘,  낮은 벽돌집들이 못생기게 줄을 지어 붙어있었고 도로는 좁고 구불구불했다.  나에게 런던의 첫인상은 어릴 적 내 짝꿍을 보는 기분이었다. 매일 똑같은 후줄근한 티를 입고 콧구멍을 무심하게 후비던 내가 별로 좋아하지 않던 짝꿍..

한국식 고층 아파트와 깔끔히 페인트칠된 네모 반듯한 건물들에 익숙해져 있던 나에게 런던의 첫인상은 투박하고 촌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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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런던이 나에게 알려준 것들 "

 

 

 

 

# 나도 같이 후줄근해진다.

런던에 정착한 후 3개월 정도는 매일같이 한국에서 하던 것처럼 화장과 머리를 하고 옷도 정성 들여 입고 다녔다. 시간이 지나고 관광객 모드에서 벗어나게 되자 꾸미고 다니는 사람은 관관객들 뿐이며 로컬들은 생각보다 꾸밈에 신경을 안 쓴다는 걸 알아차렸다.

한국처럼 시시각각 트렌드가 바뀌고 유행에 민감한 사람들 대신 런던은 본연의 모습으로 가장 본인답게 하고 다니는 개개인이 모여 세련된 런더너를 만든다.  런던에서 가장 패셔너블하게 보이려면 내 본연의 모습으로 최대한 자연스럽게 하고 다니는게 최고다. 그래서 나도 내가 가장 편한 모습, 남이 아닌 내가 하고 싶은 모습대로 하고 다니기 시작했다. (실은 먹고사니즘에 바빠서 귀찮아서 후줄근해졌다는 게 정설임.)

 

 

# 콘센트는 원래 집에 있는 건 줄 알았는데...

윔블던에서의 홈스테이가 끝나고 본격적으로 런던 혼자살이에 돌입했다. 그래서 구한 집이 런던 1 존에 위치한 핌리코라는 동네였다. 핌리코의 작은 싱글룸을 난생처음으로 계약을 하고 방에 입주한 날 나는 머리가 어질 했다. 콘센트를 꽂아야 할 자리에 침대가 가로막고 있어서 연장 콘센트를 사지 않는 이상 핸드폰을 충전하거나 드라이기를 사용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대로 테스코에 달려가 콘센트를 사 오고 다른 자질구레한 생활용품을 사는데 혼자 안 살아본 티가 너무 나서 좀 부끄러워졌다. 지난 27년간 연장 콘센트를 내 돈 주고 한 번도 안 사봤다는 게. 

내가 얼마나 한국에서 많은 것들을 당연하게 누리고 있었는지 깨닫게 되면서, 나는 혼자서 그렇게 나를 키우고 먹여 살리는 법을 배우고 있었다. 

 

 

# 이별에 익숙해진다.

방을 얻고 1주 정도 뒤에 런던의 코벤트 가든 위타드에서 일을 하게 되었다. 어수룩한 영어를 써가며 어떻게든 적응하려고 허둥댔고 다행히 가게에는 아시안들이 많아서 동료들을 친구로 쉽게 만들 수 있었다. 

하지만 친해지는 것도 잠시, 얼굴을 트고 서로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 했다 싶으면 동료들은 다시 자기 나라로 돌아가거나 일을 그만두었다. 나는 이 불규칙적인 헤어짐에 익숙해져야만 했다. 런던 뜨내기들의 생활은 다들 그랬다. 모두가 쉽게 친구가 될 수 있지만 모두가 곁을 영원히 지키지 않는다는 것, 그게 런던이었다. 

 

 

# 그래도 내 편은 필요해.

1년이 조금 안되게 런던 한복판 핌리코에서 생활하면서 잡을 두 번이나 바꾸었다. 일한 장소 모두 관광객들을 상대하는 중심가 쪽이다 보니 정신과 몸이 쉽게 지쳤다. 일하는 사람은 너무 자주 바뀌고 관광객이 대부분인 손님을 상대하면서 내 삶까지 관광객처럼 둥둥 떠다니는 삶 같았다. 

마침 옆방에 살던 한국인 플랏 메이트가 같이 나가서 살아보는 게 어떻냐고 제안을 했다. 그래서 우리는 매우 싼값에 같이 살 수 있는 방을 구했고 한국인 플랏 메이트와 한방에서 살면서 든든한 느낌이 들었다. 더 이상 혼자가 아니라는 생각. 그리고 집을 옮긴 지 얼마 되지 않아 지금의 남자 친구도 만나게 되었다. 변하지 않을 내 편이라는 존재가 생기니 마음의 여유가 생겼다. 

 

 

 

 

# 진짜 영국을 만나다. 

남자 친구를 만난 이후로는 나는 관광객처럼 둥둥 떠다니는 삶을 살지 않게 되었다. 

그제야 나는 관광도시 런던이 아닌, 영국의 런던을 보게 되었고, 진짜 영국인의 삶을 볼 수 있게 되었다. 남자 친구와 하는 모든 일이 새삼스러웠다. 병원이나 은행을 함께 가는 길이 그랬다. 나는 유독 병원, 은행, 우체국 등 관공서 가는 일을 무서워했는데, 남자 친구와 함께 다니면서 그 두려움이 사라졌다. 그리고 사소한 영국식 매너 하나까지도 배울 수 있었다. 진짜 영국을 마주하고 난 후부터는 런던이라는 거대 도시보다 영국이라는 나라가 좋아졌다. 이 전에는 철부지 관광객으로써 영국에 살았다면 지금은 영국을 제대로 이해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 된 것이다. 

 

 

# 나에 대해 설명하는 걸 두려워하지 않게 되다. 

새로운 영어를 배우는 것을 좋아하고 영국식 유머에 가끔 고개를 갸우뚱하며 한발 늦게 웃는 한국사람, 은행 가는 것을 아직도 무서워하지만 새로운 사람들과 이야기하는 걸 좋아하는 나, 유러피안들 게을러서 일 같이 못하겠다며 매일 험담을 하지만 매일 늦잠을 자서 아침을 못 먹고 출근하는 게 일상인 나, 아직도 Lovely 란 단어가 낯간지러워 쓰지 못하는 나 등. 

이렇듯 영국 생활 2년이 나에게 가져다준 가장 큰 변화는 '내'가 누구인지 '나 스스로' 정의할 수 있게 된 것이고 '이런 나라도 괜찮아.' 라며 나를 사랑할 수 있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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