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차, 뜨거운 한 잔이면 충분해.

# 홈스테이와 아침홍차.

영국인들의 홍차 사랑은 정말 유별나다. 한국인의 소주 사랑과 같다고 하면 비교가 될까? 아니 내가 봤을 땐 그것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진 않은 것 같다.

런던에 처음 왔을 때 윔블던에서 다정한 영국인 할머니 할아버지가 운영하던 홈스테이를 한 적 이 있다. 저녁식사를 담당하던 큰 손 홈맘이 아침에 늘 늦잠을 주무시는 탓에 아침식사 차림은 홈파의 역할이었는데, 홈파가 매일 아침 차려준 상은 심플하지만 현실적인, 그리고 먹기 편한 그야말로 영국식 아침식사였다.

티를 한가득 담아놓은 티팟(귀엽게도 티팟의 열기가 가시지 말라고 덮개까지 씌워두셨다!)에 취향별로 티에 넣어먹을 수 있도록 마련한 우유와 설탕. 그리고 한켠에는 토스트 해 먹을 수 있게 쌓아둔 호밀식빵과 버터와 딸기잼, 마멀레이드 잼까지. 

따뜻한 차에 우유 조금, 설탕 반스푼을 넣어서 먹는 연한 밀크티 맛이란! 6월이었음에도 늘 축축하고 차가운 공기가 서려져 있던 영국의 아침을 깨우기에  커피보다 더 강력한 최고의 한 잔이었다.

 

거대티팟과 우유와 설탕. 그리고 토스트, 잼들, 영국적인! 너무나도 영국적인 아침식사

 

# 귀족문화 혹은 진통제.

귀족들로부터 시작된 극진한 차 사랑은 차재배가 보편화되면서 영국인의 삶 곳곳을 침투했다. 귀족들의 삶을 선망하고 갈구했던 일반 중산층은 물론 도시의 극빈층과 노동자들에게도 티 문화가 널리 퍼졌다. 빅토리아 시대의 산업화 과정속에서 육체와 정신이 고단했던 도시 노동자들은 당시 늘 술에 찌들어 살았었는데 홍차는 그들이 술에서 깰 수 있도록 하하는 일종의 숙취제 역할을 한다. 이쯤되면 홍차는 거의 만능 재주꾼이다. 영국인들 삶에 있어서 홍차는 따라하고 싶은 귀족문화에 대한 카피역할 혹은 지독한 삶의 진통제 역할을 훌륭하게 수행해냈으니 말이다. 

 

 

# 애프터눈티.

영국은 맛이 없고 자랑스럽게 내놓을만한 전통요리가 없는 나라로 유명하다. 늘 비가 오고 사계절이 있는 듯 없는 듯 맹맹한 날씨 탓에 작물이 재배되기 어려워 다양한 식재료가 부족한 이유가 크다. 그리고 역사적으로 엄격한 청교도 영향을 받으면서 프랑스처럼 화려한 요리를 먹는 것은 사치라고 생각한 영국인들의 생각도 한몫했다. 

잃는 게 있으면 얻는 게 있다고도 했나? 영국은 요리를 잃어버린 대신 풍성하고 화려한 애프터눈 티 문화가 발달이 되었다. 18세기에 영국에서 시작된 애프터눈티는 티와 함께 먹을 수 있게 한입으로 잘린 샌드위치, 페이스츄리, 케잌, 스콘과 잼등과 함께 올라온다. 소박하고 메마르기 그지없는 영국인의 밥상을 보다 애프터눈 티 테이블을 보면 주객이 전도된 느낌이 들 정도로 시각적으로 화려하다. 오늘날 영국의 애프터눈티 셋트 즐기기는 빠져서는 안될 영국의 주요 관광코스가 되었다.

 

 

# 크림티.

 나는 우유와 설탕을 넣은 홍차에 스콘, 클로티드 크림, 일명 크림 티를 가장 좋아하는데, 마카롱이나 케이크 단 디저트류를 즐기지 않는 나에게 최고의 디저트이다. 

클로티드 크림은 영국의 데본과 콘월 지방에서 처음 만들어졌다고 한다. 하얗고 수줍은 모습을 숨기고 있는 듯한 이 크림은 우유를 가열하면서 얻어진 뻣뻣하지만 고소한 맛이 나고 뒷맛이 매우 부드러운 게 특징이다. 나도 한때 클로티드 크림에 푹 빠져서 매일을 크림과 스콘만 먹었으니! 담백하고 달지 않아 영국에 오면 꼭 먹어야 할 디저트로 강력 추천한다. 

밀크티와 클로티드크림, 스콘, 소박하지만 확실한 디저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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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세네 시경, 무언가를 시작하기도 너무 늦고, 끝내기엔 너무 빠른 시간.

 

영국인들은 이 애매한 시간대에 물을 끓이고 차를 우려낸다. 향긋하게 우려나오는 차 냄새를 맡으며 오늘 하루를 차분하게 정리해본다. 다소 음울하고 늘 회색빛인 창밖을 보며 하루내 받았던 스트레스를 차와 함께 고상하게 날려보내는 것이다.  여러분도 오후의 홍차를 마시며 월요병을 이겨내는 것은 어떠한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