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식 악센트 배워야 할까?

 

 

예전에 학교 다녀오겠습니다 라는 예능을 보는데, 전현무가 학생들 앞에서 영국식 악센트로 스피킹을 하겠다며 코믹반 + 진정성 반으로 따라한 것을 본 적이 있다. 그 당시 나는 런던에 있을 때였고 전현무가 보여주고자 하는 포인트가 너무 재미있어서 남자 친구에게 전현무가 하는 영국식 악센트가 어떻냐고 물어보았더니 남자 친구는 조금 웃더니 그 사람이 뭘 부각하고자 하는 건 알겠는데 전혀 영국식 악센트 같지 않아.라는 평가를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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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를 잘 하는 것처럼 보이려면 미국식으로?

 

 

 

한국에서의 영어교육은 미국식 악센트로 영어를 하는 것에 중점을 둔다. 할리우드 영화나 미드의 영향이 크기도 하고 한국사람들의 인식 또한 영어 발음을 제대로 하려면 미국인들이 하는 것처럼 윤기 나고 부드럽게!라는 인식이 강하기 때문이다. 미국식 문화가 영국식 문화보다 더 깊게 스며들어있다 보니 미국영어를 하는 사람들은 왠지 무조건 잘 해보이는 이미지가 있다. 

 

 

 

나 또한 미국식 악센트나, 단어, 발음이 훨씬 익숙했고 영국영어는 다가가기 힘든 벽과 같이 느껴졌다. 그래도이왕 영국까지 왔는데 영국식 악센트를 따라 하고 싶다는 마음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특히 영국 여자들이 말을 할 때 그 특유의 꾀꼬리 같은 예쁘고 참한 느낌을 주는 엑센트가 너무 좋아서 부러워 미칠 뻔한 적도 있었다. 

 

 

 

런던의 코벤트 가든 Tea 판매점에서 세일즈 어시스턴트로 일을 처음 시작한 후, 최대한 런던 여자들 악센트를 따라 했다. 그게 정통 영국식 악센튼지 전현무처럼 내 상상 안에서 만들어낸 악센트 인지도 모른 채 말이다. 

 

 

 

그렇게 런던에서 1년여를 보내고 지금의 남자 친구를 만나게 되었다. 솔직히 말하면 지금의 남자 친구 전에는 주변에 원어민인 친구가 거의 없었다. 내 말은 영어가 제2 외국어인 외국인 친구들과 동료들은 많았지만 여기서 나고 자란 진짜 네이티브는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동료로써 몇 명 있었을 뿐이지, 그마저도 그들과 매일매일 친구처럼 대화를 하지 않기 때문에 대화 수준과 양에 있어서는 남자 친구와 대화하는 것 만 못했다. 

 

 

 

어느 날 남자 친구와 레스토랑에 가서 오늘 있었던 일을 조잘조잘 떠들었다. 나는 "그 상품이 프로모션이어서 세일을 우리가 했는데 ~ " 라고 하자 남자 친구가 프로모션이라는 단어를 못 알아듣는 것이다. 나는 괜한 자격지심에 "넌 네이티브가 왜 내가 하는 말을 못 알아들어! 너 빼고 나와 일하는 동료들, 손님들도 다 알아들어. 손님들 중 몇 명은 네이티브였다구." 하는데 남자 친구가 하는말은 조금 충격적이었다. "그들은 알아듣는 척하는 걸 거야. 외국인인 너의 동료들은 너의 발음이 뭐가 이상한지도 모르고 알아듣는 거고, 네이티브 손님들은 너의 발음이 틀린 걸 알아도 지적할 순 없으니까 그냥 넘어가는 거지."라고 말이다. 

 

 

 

그 말을 듣는데 여태껏 내가 영국식 악센트라고 썼던 꼴 같지도 않던 흉내들이 너무 창피해져서 아무 말을 할 수가 없었다. 

 

 

 

남자 친구는 이런 말을 덧붙였다. 

"너는 영어가 모국어가 아니니까 영국식 악센트를 쓰지 않아도 돼. 한국식 억양에, 발음만 제대로 해. 발음을 정확하게 하려고 더 노력해봐. 그게 네이티브에 가까워지는 길이야. 한국에는 없는 발음들(R과 L, P와 F)을 구분하려고 하고 정확히 말하려고 해 봐." 

 

 

 

난 그날 이후로 영국식 악센트만 고집하던 나를 버리고, 내가 말하기 쉽고 편한 억양을 찾기로 했다. 그래서 악센트보다 발음에 조금 더 집중을 할 수 있게 말이다. 결과적으로 지금 나의 영어 억양은 미국식 + 어설픈 영국식 + 한국식 억양을 가진 짬봉영어였다. 그래도 시간이 조금 더 지나니까 미국식은 더 빠지고 한국식 + 어설픈 영국식만 남더라.

 

 

아직도 남자 친구는 내가 다르게 하는 발음들을 종종 지적해주곤 하지만,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와 비교하면 정~말 많이 늘었다고 해준다. 그리고 나 스스로도 그게 느껴지기도 해서 뿌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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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에는 각자의 나라만큼의 억양이 존재한다.

 

 

내가 아는 여자친구는 홍콩에서 태어나 7살까지 살다가 그 이후에 영국에 넘어왔다. 언뜻 들으면 그녀의 영어가 완벽한 영국악센트 같지만 귀가 조금 더 익숙해지면 그녀의 억양에는 분명히 영국보다는 광동어 억양이 자리하고 있다. 그녀도 그 사실을 알고 그 자체에 대해 당당하다. 왜냐하면 그녀의 발음은 아주 정확하기 때문에 미세하게 광둥어 억양이 있어도 영어 전달에 있어서 전혀 문제가 없고 되려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낼 수가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영국, 특히 런던은 수많은 이민자들이 모여 산다. 그래서 런던에 있으면 영국식 정통 영어를 듣는 것보다는 각자의 나라에서 온 이민자들, 관광객들의 글로벌한 영어를 듣는게 더 쉽다. 

자신은 여기서 태어났지만 부모님은 아프리칸프렌치인 내 동료, 포르투갈에서 10대 때 건너와 10년도 넘게 영어를 쓴 내 친구, 폴란드가 국적이지만 런던에 산지 20년도 넘는 내 동료 등 너무나 다른 국적들과 영어를 쓰게 된 시간의 양이 다른 그들은, 그들만의 억양으로 영어를 한다. 

 

 

 

그러나 그 중 아무도 자신의 억양을 부끄러워하거나 숨기지 않는다. 

 

 

 

우리는 한국 사람이기에 모국어로 십 수년간 말해온 억양을 단숨에 버리기는 정말 정말 어렵다. 괜한 환상 품지 말고, 자신이 편하게 느껴지는 억양에 발음만 발음기호대로 정석으로 하자. 내가 하는 영어에 자신감을 가지고 나만의 호흡으로 하다보면 악센트는 머릿속에서 지워지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