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여자, 영국남자를 만나다 : 프롤로그

 지구 반대편에서 만난 내짝. 

 

나는 항상 사랑을 갈구하는 사람이었다. 동시에 사랑을 제대로 줄줄도 받을 줄도 모르는 사람 고장난 사람이었다. 20대의 대부분은 짧은 연애들과 수많은 썸들로 남자없이 살았던, 오롯이 나 혼자였던, 시간들은 정말 짧았다. 

 

연애를 통해, 남자를 통해서 내 모습을 찾길 바랬고, 상대방이 내가 누군지 알려주길 바랬다. 나 스스로도 내가 누구인지 모르면서 말이다. 

 

 

그만큼 나는 자존감이 낮았고 항상 남을 통해서 나를 비춰보았다. 남자에게 사랑받고 연애를 하는 것만이 인생의 전부라고 여겼다. 나는 나를 제대로 돌보지 않았다. 

 

28살,

어렸을 때부터 꿨던 내 오랜 꿈, 세계여행과 해외에서 살아보기. 라는 막연하고 두루뭉술한 꿈 하나만을 가지고 런던에 갔다. 

 

한여름의 런던은 햇볕이 따사로웠고 런더너들과 관광객들의 틈속에서 나는 자유를 만끽했다. 매일 마트에 가는 것조차도 행복이었고 아무 것도 없이 공원에 가서 누워있는 일들이 천국이었다. 

 

 

 

 

호기심 가득한 런던 생활도 오래가지 못했다. 10월쯤이 되자 영국은 심술궂은 모습을 드러냈고 런던의 낭만은 오래가지 못했다. 

 

 

우중충한 날씨와 인종차별, 영어가 익숙치 않은 아시안 여자로살아가는 게 마냥 행복한 일만은 아니라는 걸, 내가 이 나라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지 걱정이었다.

 

 

그렇게 1년을 런던에서 버티듯 살아냈다. 

 

 

 

 

 

 

 

런던 생활이 지쳐갈 때쯤 지금의 이 남자를 만났다. 나도 이 남자가 좋았지만, 동시에 불안했다. 아무것도 가진게 없는, 2년짜리 외노자가 뭐가 좋다고 만나는걸까?

의사소통이 충분히 안된다고 날 싫어하진 않을까? 부모님과 이야기할 때 못알아들으면 어쩌지. 누가 나를 백인남자나 만난다고 허세라고 손가락질 하면 어쩌지. 라는 생각들로 가득찬 날이 하루 이틀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서로를 이해시키고 지켜주고 생각을 바꿔주고 서로의 회색빛 런던생활을 무지개빛으로 바꿔주었다.

 

각자의 나라에서 나고 태어나길 20여년, 알게모르게 '나 자신이 가진 고유한 생각' 보다는 한국식 문화에 길들여진 한국식 사고방식을 가진 나와 영국식 사고방식을 가진 그 남자. 단 1mm의 문화차이는 서로에 대한 이해부족으로 이어지기가 쉬웠지만 우리는 매일을 지치지도 않고 대화를 나누고 서로를 이해 시켰다. 

 

이 남자와 대화를 하면 할 수록 내가 누군지 선명하게 보였다. 이 사람이라면 하루 온종일 대화를 질리지 않을 것 같았다. 그래서 미래를 함께 하고 싶어졌고, 우리는 그러기로 약속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