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말해주지 않은 임신에 대한 현실

# 심한 입덧 때문에 아기를 포기하고 싶었던 임신 초기

내가 아는 입덧은 이게 아닌데... 티브이 속 드라마에서 보는 입덧은 갑자기 웩~ 하는 것 정도였다.

나도 딱 그 정도인 줄만 알았다. 

차멀미처럼 속이 좀 메슥거리는 정도인가 보다..라고 안일하게 생각했다. 

 

 

입덧에는 개인차가 있다는 사실조차도 몰랐다. 아니 임신/출산에는 아예 무지렁이였다는 게 맞는 말이겠지,

30년간 싱글, 비 임신녀로 살아오면서 임신/출산은 나에게 있어 저 멀리 화성 같은 것과도 같은 존재였으니까. 

 

 

 

 

 

임신 초창기, 나에게도 입덧이 찾아왔다. 이때는 본격적으로 토하지는 않고 특정 냄새에만 예민해졌다.

모든 음식이 뒤섞인 냉장고 냄새, 밥 짓는 냄새, 고기 굽는 냄새, 김치 냄새, 특히 요리하는 냄새 자체가 역해서 부엌일에서 완전 파업을 선언해야만 했다. 

 

 

 

그리고 며칠 지나지 않아 본격 구토가 시작되었다. 

그 구토의 정도가 너무 심해서 물만 마셨을 뿐인데 구토를 했고, 김밥 하나 먹었을 뿐인데 그걸 고대로 게워냈다.

그냥 이 상황이 감당하기가 힘들었다.

 

 

내가 평소에 먹는 양의 3분의 1도 못 먹는데 그마저도 다 게워내야 한다니. 

 

 

그것뿐이랴, 이도 닦지 못 하고 나중에는 걸어다니지도 못했다. 몸을 움직여 돌아다니면 속이 부대껴서 울렁거림과 구토가 찾아왔기 때문이다. 그렇게 두달정도를 침대에서 꼼짝도 못하고 좀비처럼 지냈다. 

 

 

나중에는 화가 치밀더라. 왜 미디어나 사람들은 아기 낳으면 좋다는 이야기만 하지,

입덧이 이렇게 힘든 거라고는 말해주지 않았던 걸까? 

입덧이 한 사람의 일상을 아예 무너뜨릴 것이라고 왜 아무도 경고하지 않았던 걸까? 

 

 

 

결국에 나는 심한 탈수 증상 + 영양 부족으로 인해 병원에 하루 입원해야만 했다. 

 

 

 

 

# 임신의 기회비용

원래 나는 영국에서 개발자로 취업준비를 하고 있었다. 막 포트폴리오를 마쳤고, 인터뷰제 의도 한번 받았다(거리가 너무 멀어서 비록 무산되긴 했지만...)

하지만 나는 임신으로 인해서 이 모든 과정들을 포기해야만 했다. 아니 포기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하루에도 몇 번씩 토를 하고 제 몸을 가누지도 못하는데 어떻게 잡 어플라이를 하고 인터뷰를 보고, 실제로 일하는 건 완전 무리였다. 

 

 

 

 

 

그때 두려움이 덮쳐왔다. 아 이게 사람들이 말하던 임신으로 인한 경력단절이구나...

앞으로 최소 1년은 출산하고, 아기 보느라 직업을 갖지 못할 텐데 그때 되면 내 나이는? 내가 했던 모든 일들은? 

평생 남의 일인 줄만 알았던 경력단절이 당장 내 눈앞에 닥쳐오니 막막하고 우울했다. 

 

 

 

임신을 하면 이 세상은 내가 알던 세상이 아니게 된다.

그로 인해서 내가 나를 바라보는 관점도 바뀌고 사회가 나를 바라보는 관점도 달라진다. 구직활동은 올 스탑이 되고, 평범했던 일상(나들이 가는 것이나, 음식을 먹는 일)에 엄청난 제약을 느끼게 된다. 

임신하고 나서는 밤에 등을 대고 누워 자지도 못했으니 일상생활의 변화로 인해 얼마나 불편한지는 말 다했다. 

 

 

일상생활도 엉망인데, 사회에서는 당연히 임산부를 반길 일 없다.

내가 내 몸을 가누지도 못하고 몇 달 뒤면 출산을 하러 갈 텐데 어느 회사가 나를 반길수 있을까?

그리고 아기를 낳고 나서 최소 1년은 내가 돌봐야 할 텐데 신생아 아기 돌보기와 직업을 병행할 수 있을까? 

 

 

 

#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게 생각하기로 했다.

아니 이 시기를 발전의 기회로 삼기로 했다는 게 더 맞는 말이다. 

임신 초기에는 우울감, 원망감, 무력감, 막막함, 사회에서 멀어졌다는 생각, 나를 잃어버렸다는 온갖 부정적인 생각들로 가득찼었지만 지금의 내 생각은 조금 다르다. 아마 적응이 조금씩 된 거겠지.

 

 

임신은 아기를 계획하는 사람이라면 어쨌든 평생에 한 번은 거쳐야 하는 과정이다.

나는 그걸 '지금 이 시기'에 겪고 있는 거고 어차피 겪어야 할 일을 부정적으로 생각할 필요는 전혀 없는 것이다.

 

 

마치 우리가 꼭 해야만 하는 '자기 전에 이 닦기'를 부정적으로 생각하지 않고 그냥 하듯이, 임신도(계획한 사람 아래!) 그냥 견뎌내야 하는 인생의 이벤트 중 하나인 거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조금 누그러졌다.

 

 

 

 

 

아기를 품고 낳는다는 것은 내가 근로자, 노동자도 아닌 세상의 가장 크고 특별한 '생산자'가 된다는 것이다.

내가 이 세상에 기여할 생산자가 된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하니 내가 조금 기특하게 느껴졌다. 

 

 

임신으로 인한 무직 기간 동안 평소 하고 싶었던 취미활동(페인팅, 식물 기르기)을 시작했다. 내 일상을 무력하게만 채울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구직활동도 못하게 된거, 이참에 하고 싶은거 다하자! 라고 마음을 먹었다.

그리고 재테크와 온라인 창업에 전보다 더 큰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매일 매일 현실 가능한 재테크 목표를 만들고 있는 중이다. 

 

 

좋건 나쁘건 임신이 내 인생의 큰 전환점인 건 분명하다.

이 시간을 어떻게 생각하고 자기 자신을 어떻게 바라보냐에 따라 나는 부정적인 엄마가 될 수 도 있고 이걸 기회삼아 아예 다른 나로 성장할 수 있는 성장하는 엄마가 될 수도 있다. 

 

 

모든 것은 내 손안에 달려있다. 세상의 모든 미래의 엄마들 파이팅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