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의 데이트 문화, 틴더가 대세!

#1. 소개팅 문화가 없다.

 한국의 커플들에게 어떻게 만났냐고 물어보면 적지 않은 커플이 소개팅에서 만나서 커플이 됐어요!라고 대답할 것이다. 이렇게 한국에서는 흔하디 흔한 소개팅 문화 혹은 선 문화는 영국에서는 찾아보기 힘들다. 

소개팅을 굳이 영어로 말하자면 나는 Blind date 보다 Set it up이라는 영어를 쓰는 게 적절하다고 생각하는데 Set it up은 친구가 자기가 아는 지인을 연결해준다거나 누가 누구랑 잘 어울리겠다 싶어서 가운데서 주선자 역할을 자청하고 둘을 소개해준다는 의미가 있다. 

개인의 사생활을 지독하게 중요시 여기고 남의 사생활에 깊게 터치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영국 사람들은 굳이 누가 누구를 공들여 연결해준다거나 하는 수고스러운 일은 하지 않는 편이므로 이조차도 찾아보기가 힘들다. 남자 친구에게 누군가를 Set up 해주거나 그 상황에 놓인 적이 있냐고 물어보니 대학교 시절 자신의 친구가 같은 학교에 다니던 한국계 캐나디안 여자를 소개해주었다고 한다. (그 후에 별 다른 진전은 없었다는..)

 

 

 

 

그러면 어디서 어떻게 내 짝을 만나냐고? 

 

 

 

주로 데이팅 앱(틴더, 범블, 힌지 등)을 통해 만나거나, 친구들과 펍에 갔다가 맘에 드는 사람이 있으면 번호를 따거나 따이 기도 하고, 클럽에 가서 클러빙을 하다 눈이 맞기도 한다. 그리고 지인이 연 파티에서 만나 사랑에 빠지는 경우도 봤다.

특히 내 주변의 유러피안 싱글 친구들은 데이팅 앱 신봉자들이 많은데, 나와 같이 일하던 동료 중 한 명은 여러 가지의 데이팅 앱을 다운로드하여 각각의 앱에서 다양한 남자들과 온라인으로 채팅을 하고 그 중 정말 맘에 드는 남자만 골라 오프라인 데이트를 즐긴다.

 

 

 

 

 

 

나 역시 틴더의 추종자 중 한 명이었다. 현재의 남자 친구이자 약혼자를 틴더에서 만나게 되었고, 남자 친구의 형도 현재 여자 친구를 데이팅 앱에서 처음으로 만났다고 하니, 영국의 데이팅 앱 인기는 폭발적이다. 그리고 데이팅 앱에 대한 거부감이 적어 앱을 통해 사람을 만나는 것을 창피해하거나 굳이 숨기려고 하지 않는데, 아마 확실한 목적을 가진 데이팅 앱 말고는 마음에 드는 파트너를 만날 수 있는 곳이 제한적이기 때문이어서 그런 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2. 너랑 데이트하는데 다른 남자 만나도 된다고? 

 남자 친구를 만나기 전에 이탈리안 남자와 데이트를 한 적이 있었다. 당시의 나는 영국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았었고 이곳의 데이팅 문화가 어떤 순리로 돌아가는지 모를 때였다. 

우연히 참여한 언어교환 밋업에서 만난 이탈리아 그놈과 나는 타국에 나와 고생하는 외노자라는 공통점이 있었기에 급속도로 친해질 수가 있었고 그렇게 4개월 정도는 꾸준히 만나고 텍스트를 주고받고 스킨십도 자연스럽게 하고 서로의 친구를 만나기도 하는 둥 연인인 듯 서로를 챙겨주기도 했다. 

 

 

 

나는 당연히 우리가 '사귀는 중'이라고 생각을 했다. 그도 그럴 것이 나는 한국식 연애 문화에 길들여져 있었고, 한국식으로 따지면 우리는 '할 것 다한' 사이인데 당연히 이건 남자 친구-여자 친구의 관계라고 생각을 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탈리아 그놈은 나와는 전혀 다른 생각이었던 것. 

 

 

 

그 친구는 그 당시 영국에서 하던 일이 힘들어서 이탈리아로 곧 돌아갈 거라고 했다. 그래서 나는 네가 이탈리아로 돌아가면 우리는 장거리 연애를 해야 하는 거냐 라고 했더니, 나에게 "아니 넌 다른 남자 만나도 돼."라고 하는 것이다. 따져보니 이탈리안 그놈의 생각은 자신은 곧 본국으로 돌아가야만 하는 상황이기도 했고 장거리 연애를 하면서까지 우리의 관계가 소중하고 심각하다고 여기지 않았기 때문에 나온 발언이었다. 

아니 그래도 그렇지, 이 무슨 책임감 없는 소리인고...라고 억장이 무너지는 마음을 가다듬고 해외생활을 10년 넘게 해온 친한 언니에게 이 상황을 설명했다.

 

 

 

언니 왈,

" 유러피안 남자들 중에는 너와 만나는 지금 이 순간을 즐겁다고 생각할 뿐이지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 그리고 둘의 관계를 적절한 시기에 확실하게 Committed 하지 않으면 진지한 관계라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가볍게 데이팅만 하거나 잠자리만 하는 사이가 되도 본인은 손해볼게 없는거지. 너도 같은 마음을 가지고 있고 그런 관계에서 상처 받지 않을 자신이 있다면 그렇게 해도 좋은데, 내가 볼 땐 너는 남자친구 - 여자친구가 되길 원하는 것 같애. 그치만 그건 걔가 원하지 않는거고, 너가 원하는 바가 있으면 너가 앞에 나서서 이야기 해야되. 그렇지 않으면 이 관계에 질질 끌려 다닐꺼야. 내가 봤을 때 너가 더 이상 상처받기 전에 빨리 관계 정리해. " 

 

 

 

언니의 뼈때리는 조언을 듣고 난 후 나는 내가 생각하고 원하는 바를 이야기 했고 우리의 의견차이는 도무지 좁혀지질 않았다. 그렇게 관계는 멀어졌고 몇 주 뒤에 이탈리안 그 친구가 본국으로 돌아간다는 문자를 받고 나서야 나는 조그마한 미련까지도 버릴 수 있었다. 

 

 

 

#3. Committing 단계, 나의 여자 친구, 남자 친구가 되어줄래? 

이와 같은 애매모호한 관계 정립은 현재의 남자 친구와도 겪게 된다. 남자 친구와 나는 틴더를 통해 만나게 되었는데 한 달가량을 보통 연인들처럼 밥 먹고 텍스트를 주고받고 서로의 플랏에도 놀러 가며 관계를 키워나갔다. 한 달 정도가 지났을 때, 나는 그 전 이탈리아 그놈에게 호되게 당한 이력이 있는 탓에, 우리의 관계가 어딜 향해 가고 있고 서로 원하는 바가 같은 건지 확실하게 짚고 넘어가고 싶어 졌다.

 

 

 

남자 친구는 내가 여자 친구가 되어줄래?라는 말을 계속하려고 했는데 나에게 거절을 당하기가 두려워 그동안 관계 정립하는 것을 미루어 왔다고 했다. 그러면서 오히려 나의 적극적인 공세에 고마워하며 서로의 남자 친구-여자 친구가 되어줬으면 좋겠다고 하고 그 날 이후부터 공식적인 연인 사이가 되었다. 

 

 

 

 

 

 

 

시간이 흐른 뒤에, 나는 남자 친구에게 이러한 관계 정립이 그렇게 힘들고 중요한 과정이냐고 물어본 적이 있다. 남자 친구에 따르면, 대다수의 유러피안들은 데이팅을 시작하고 초창기 서너 달 정도는 Getting to know each other이라는 과도기를 꼭 거친다고 한다. 그래서 그 과정에서 서로 원하는 바가 다르면 캐주얼한 데이팅만 하기도 하고, 서로가 다른 남자, 다른 여자들을 만나서 데이트를 하기도 하고, 원하는 바가 같지 않으면 서서히 멀어지면서 자연스럽게 헤어진다면서 바로 남자 친구-여자 친구라는 프레임을 씌우는 일은 거의 없다고 했다. 

 

 

 

아니, 스킨십도 하고 서로 데이트도 하고 할 거 다 하면서 관계 정립은 똑바로 안 한다니, 참으로 속 편한 소리이면서 동시에 누군가의 인생에 중요한 사람이 된다는 것에 대해 한국보다 보수적이고 신중한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4. 동거, 그것은 애인 이상 부부 이하, 그 어느 단계쯤 

 나의 남자 친구는 남자 친구의 쌍둥이 형과 쌍둥이 형의 여자 친구 이렇게 셋이 한 플랏에 산다. 이 커플은 만난 지 몇 개월 만에 경제적인 이유로 같은 집에 살기로 결정했다고 한다. 

이런 액션은 Moved in이라고 해서 연애에 있어 동거를 결정하는 것 자체가 유러피안 연인들에게도 빅 스텝 중 하나이다. 

 

 

 

 

나와 남자 친구가 정식으로 사귀게 되고 남자 친구의 집을 자연스레 오가는 일이 많아지자, 남자 친구와 남자 친구형의 커플은 나에게 같이 들어와 살 생각 없냐는 제안을 한 적이 있다. 하지만 모태 유교 걸인 나에게는 동거문화는 받아들이기 힘든 큰 벽이었고, 나는 그 제안을 거절했지만 영국 내 커플들의 혼전동거는 매우 자연스러운 문화 중 하나이다. 영국은 어린 나이에 혼자 나와 독립적인 삶을 꾸리는 사람들이 많기도 하고, 런던의 살인적인 집세 덕분에 대다수의 유러피안 커플들이 같이 사는 것에 대해 큰 거부반응이 없다. 되려 많은 유러피안들이 이 혼전동거가 결혼하기 전 꼭 필요한 단계라고 생각을 하고 있으며, 동거를 함으로써 실제로 이 사람이 나와 결혼을 해도 될만한 사람인지 알 수가 있게 되고 결혼을 하고 나서 이혼할 확률이 낮아진다고 생각을 한다. 

 

 

 

보통 영국의 연인들은 데이팅 - 관계 정립 - 동거 - 약혼 - 결혼 이러한 스텝들로 차근차근 진행이 된다. 동거를 하다가 아기가 먼저 생겨도 결혼식 자체는 올리지 않고 사는 커플들도 많고 동거를 하다가 정식 약혼을 올리고 약혼반지를 끼우게 돼도 실제 결혼식까지 가기까지는 몇 년이 걸리는 커플들도 많다. 그들에게 결혼이라는 것은 인생에 있어서 정말 중대하고 큰 이벤트 중 하나이다. 

 

 

 

약혼 후 실제 결혼까지 몇년이 걸리는 커플이 많다.

 

 

남자 친구의 친구 커플도 대학교 때 처음 만나기 시작해서 몇 년을 동거를 하다 아이가 먼저 생기게 됐지만 그 아이가 3살이 될 때까지도 결혼식을 올리지 않았다. 나이가 차면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 후다닥 결혼해버리는 한국과는 다르게 아이가 생겨도 결혼식을 올리는 걸 미룬다니 나 같았으면 답답해서 몸에 사리가 나왔을 거다 란 생각을 한다.